무념무상의 찰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의 여행
마틴 쇨러(Martin Schoeller)는 현대를 대표하는 인물사진 전문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메인 테마는 얼굴, 촬영 기법은 클로즈업, 그의 모델은 버락 오바마에서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제 그는 뉘르부르크링에서 격렬한 레이스를 마치고 피트에 도착한 포르쉐 LMP1 파일럿들의 희노애락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 장의 사진에 피사체의 진실한 감성, 더 나아가 순수한 영혼을 담아낼 수 있는가? 마틴 쇨러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모든 초상사진에는 어느 정도 허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작가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충분히 왜곡이 가능한 순간의 기록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렌즈 속 모델은 작가와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타인들이 대부분이죠. 보통, 사진 속 모습과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쇨러의 인물사진에는 이런 일반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항상 무념무상의 찰나를 찾으려고 노력하죠. 어떤 의도나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순간이 그 사람의 실제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모델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 전에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것조차 허구의 일부이고 진실한 이미지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순간적으로 세상이 밝게 변하면서 모든 사물에 대해 통찰력이 생기는 듯한 순간, 사람들이 온화한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은밀한 감정을 가식 없이 드러내는 그런 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도 시간을 기록하는 연대기 작가들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죠.”
독일 다큐멘터리 매거진 GEO에서 “가면을 벗기는 냉혈 사진사”로 극찬을 받는 48살의 그가 찍는 사진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쇨러는 얼굴에 숨겨진 모티브를 찾아 분석한 후에 이를 근거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사진을 통해 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의 촬영은 이런 치밀한 탐색 과정과 인물 속 디테일에 대한 이해의 결과물이다. 그는 영화나 토크쇼를 보거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의 매력, 성격, 특성들을 분석하는 것을 즐긴다. 그는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이 더욱 풍부해지고 사진 속 모델들로부터 끊임없이 큰 영감을 받으며, 이야기의 주제가 고갈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특히 인물을 찍는 사진작가에게 이야기 소재의 고갈은 작가로서의 수명이 다한 것을 의미한다”고 확고한 어조로 강조한다.
쇨러의 모티브가 생산해내는 미디어적 힘
메가스타나 권력가들이 자신의 카메라 앞에서 양처럼 온순해지는 것에 그는 놀라움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의 요청에 따라 빌 클린턴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옆 작은 방에서 골프를 쳤고, 쿠엔틴 타란티노는 정신병 환자들이 입는 구속복을 입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코미디언 스티브 커렐은 얼굴에 테이프를 붙여야 했다. 쇨러는 머릿속에 항상 네다섯 가지 아이디어를 간직하고 있으며 가장 약한 것부터 실행에 옮긴다. 세트장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더 대담한 아이디어를 꺼낸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그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그의 요구에 순응한다. 이 컨셉트가 쇨러 특유의 감동적인 사진이 되는 씨앗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모델은 초근접 촬영기법과 너무 사실적인 노출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머라이어 캐리와 톰 크루즈가 그와의 작업을 거부한 대표적인 유명인이다. 반면, 본드 영화로 유명한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모델로 촬영해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의 촬영방식으로 인해, 실제 촬영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지만 모델들이 오랫동안 분장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레이디 가가나 우마 서먼의 촬영에서 이런 문제들이 부각되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최고의 사진이 나올 수 없다. 다른 문제점은 모델의 성격에 따라 그의 방식을 적용할 수 없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조지 클루니가 그런 모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친절하고, 유쾌하며 저의 요구를 모두 이해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했지만, 그에게서 무념무상의 순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게 힘들었죠.” 쇨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이 헐리우드의 대스타를 놀라게 한다. 그는 예전에 찍은 클루니의 초상사진을 가져와 코와 이마 부분을 오려낸 후에 고무줄을 이용해 이 부분을 클루니의 얼굴에 마스크처럼 고정시켰다. 이 모습으로 그가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고, 조지 클루니도 그의 재치있는 발상에 동감하여 이 상태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이 사진은 그대로 세상에 공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검정색 커튼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깜찍하고 심플한 미니 스튜디오를 방문한 모델로는 다양한 헐리우드 스타 외에도 테일러 스위프트, 저스틴 팀버레이크, 이기 팝과 같은 팝스타들과 유명 정치인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앙겔라 메르켈 등이 있다. 쇨러는 권력과 표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스포츠 스타 펠레, 프란츠 베켄바우어, 세계적 스플린터 우사인 볼트,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도 그의 카메라를 피해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경기 중에 또는 경기 직후에 스포츠 스타를 촬영한 적은 없다. 긴장감, 안도감, 기쁨 또는 실망감이나 좌절감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표정은 그 사람의 본질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의 모습
쇨러는 뮌헨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베를린에 소재한 직업교육기관 레테 페어아인(Lette-Verein)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현재까지 약 25년 동안 뉴욕에 살고 있다. 그는 예술사진과 상업사진의 경계를 허문,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여류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의 조수로 뉴욕에서 4년 동안 일한다. 이후 그는 12년 동안 미국의 유명한 주간지 The New Yorker에서 계약 사진작가로 근무한다. 그는 아직도 이 잡지회사와 일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Time, National Geographic, Rolling Stone, GQ 또는 Forbes와도 정기적으로 협업을 진행한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클로즈업 촬영을 위해 쇨러는 부드러운 네온 조명을 사용한다. 그의 사진에서 항상 독특한 캣아이(cat eyes)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조명 때문이다. 각도는 항상 동일하다. 즉 약간 아래에서 촬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관적 기법과 그의 철학은 그가 가장 주목받는 인물사진 전문작가가 된 비밀이다.
쇨러는 금년에도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방문했다. 하지만 직접 레이스 트랙에 선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싶었어요. 경기 후에 레이서들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경기에서 졌을 때, 얼마나 실망하는지. 우승했을 때는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직접 느끼고 싶었죠.” 레이싱 드라이버가 레이싱을 마친 후에 헬멧을 벗는 순간,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드라이버의 눈에서는 어떤 감정을 엿볼 수 있을까? 팽팽한 긴장감, 스트레스, 집중력으로 일그러진 43개의 섬세한 얼굴 근육은 얼마나 경직되었을까? 레이서의 안색은 어떻게 변했을까? 900마력이 넘는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콕핏은 극한의 가속력과 온도가 지배한다. 조정간을 잡은 1시간 동안 무려 2리터의 수분손실이 발생할 정도이다.
올해 6월 19일 약 250,000명의 관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포르쉐가 르망 통산 18번째 종합우승을 달성하던 그날, 호기심 어린 쇨러의 아이디어가 구체화 되었다. 바로, 뉘르부르크링에서 개최되는 차기 WEC(세계 내구레이스 챔피언십) 레이스에서 6명의 포르쉐 LMP1 전속 드라이버의 얼굴을 촬영하는 전무후무한 프로젝트가 성사된 것이다. 촬영은 항상 드라이버 교체 직후에 이루어진다. 땀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레이서의 얼굴에서 무념무상의 찰나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뉘르부르크링에 선 스타 사진작가와 6명의 포르쉐 레이싱 드라이버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정밀성, 프로 정신, 빠른 속도, 파일럿에 우승컵을 안겨주는 승리의 찰나 그리고 스타 사진작가가 찾는 무념무상의 찰나가 그것이다. 1번 팀에서는 티모 베른하르트가 첫 번째 드라이버로 출전하고, 2번 팀에서는 닐 야니가 폴포지션에서 출발한다. 드라이버 교체 후에 파일럿은 체중을 측정하고 쇨러의 스튜디오로 이동한다. 촬영은 항상 동일한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헬멧과 바라클라바를 벗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상태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며, 촬영 전에는 누구도 땀을 닦거나 머리를 빗지 않는다. 마크 웨버는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는 “바로 전까지 한 시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카메라 앞에 서니, 갑자기 세상이 멈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브렌든 하틀리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며 소감을 밝힌다.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리다 바로 멈춘 듯, 먹먹하네요. 이보다 빠른 제동 느낌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르망 우승자 마크 리브는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렌즈를 응시한다. “프랑스에서처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네요.” 최종적으로는 1번 팀(웨버, 베른하르트, 하틀리)이 우승, 2번 팀(야니, 리브, 뒤마)은 4위를 차지한다.
파일럿들은 숨기거나 거부감 없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드라이버의 얼굴에서 비장함, 아쉬움과 의구심 또는 호기심이 느껴집니다. 이런 표정 요소들은 모두 레이스 과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라고 사진작가는 말한다. 그는 레이싱 트럭에 설치된 모니터로 경기 경과를 추적한다. “한 파일럿은 타임 페널티를 받아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이고, 다른 파일럿은 시간을 단축해 마음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운전석을 넘겨준 후 웨버의 지친 얼굴에서는 승리자의 미소를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서킷에서는 엔진의 거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사인을 받으려는 열혈팬들은 피트에서 자신의 아이돌을 기다린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티모 베른하르트가 레이스 후에 쇨러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지금은 어땠나요? 괜찮았죠? 다시 촬영하지 않아도 되죠!” 쇨러는 미소를 지으며 “예, 좋았어요. 아주 좋아요”라며 만족을 표시한다.
글 Jörg Heuer
사진 Martin Schoe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