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sche - F.A. 포르쉐의 철학

F.A. 포르쉐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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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 이 첫 번째 검정색 시계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했다. 이 시계는 포르쉐 디자인의 성공 모델이며 디자인의 역사다.

스튜디오 F.A. 포르쉐는 하이테크 주택 타워나 시대와 유행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디자인 정체성을 가진 제품들을 만든다. 디자인의 진원지는 한 남자의 원칙이다. 포르쉐 911을 디자인한 남자 바로, 이 스튜디오의 설립자인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Ferdinand Alexander Porsche)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포르쉐라는 이름은 때때로 무거운 중압감을 준다. 예를 들어 포르쉐 디자인 그룹이 그렇다. 포르쉐라는 이름만으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회사가 포르쉐의 디자인 부서고, 여기서 포르쉐 모델의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 이 디자인 스튜디오가 주펜하우젠에 있는 포르쉐 본사와는 어떤 관계가 있기는 한 것인가? 그렇다. 이 디자인 스튜디오는 본사에 속해 있는가? 현재는 그렇다.

이런 산발적인 문답은 혼란을 키우기에는 좋지만 궁금한 것을 말끔하게 해결하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라며, 롤란드 하일러(Roland Heiler)가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대표 이사다. 그가 ‘탑’이라고 불리는 이 건물의 최고층 테라스에 올라섰다. 사실 겨우 4층으로 된 이 건물의 꼭대기 층 테라스를 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된듯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오스트리아의 첼암제(Zell am See)뿐만 아니라 핀츠가우(Pinzgau)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가 테라스에서 하일러는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동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바로 포르쉐의 산실인 포르쉐가의 오스트리아 본가로,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성장한 곳이죠.” 이런 역사적인 이유로 이곳에 포르쉐 디자인 스튜디오가 세워졌다. 폭스바겐 비틀의 설계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의 결정이었다. 그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스투트가르트나 그 외의 다른 곳에 정착시키지 않고 바로 이곳 알프스 지방에 정착시킨 이유는 이곳이 바로 포르쉐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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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디자인: 선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이를 통해 펜의 하우징에 압력이 가해지고 펜의 심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는 가족 기업인 포르쉐의 디자인 디렉터였다. 1960년 대 초 스포츠카의 아이콘이 된 포르쉐 911을 디자인함으로써 자동차 디자이너계의 거장이 된다. 그는 스포츠카를 위한 다른 디자인들도 수 없이 디자인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페리 포르쉐가 이 기업을 주식회사로 변형시키고자 서명했을 때, 아들인 그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천재적 발상 ‘Chronograph I’

1972년 페르디난트 A. 포르쉐는 자립한다. 당연히 전문직인 디자이너로 독립한다. 그의 첫 임무는 포르쉐에 관련된 것이었다. ‘F.A.’는(그가 오늘날까지 내부에서 불리는 이름이다.) 포르쉐 AG를 위해 시계 디자인을 고안해야 했다. 이 시계는 공로가 있는 사원과 선정된 고객을 위한 특별하고도 고급스러운 선물이었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는 시계를 통해 천재적인 제품 디자인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Chronograph I’는 검은색 하우징과 검은색 숫자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시계였다. 이는 유희적 시도도 아니였으며, 미학적 근거도 없었다. 그는 당시에 콕핏 내부가 검은색인 스포츠카나 비행기의 대시보드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이유는 검은색이 운전을 방해하는 유리면의 반사광을 흡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블랙의 경향이 점점 감지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1972년 이후 포르쉐 911의 몰딩과 창틀은 더 이상 크롬이 아닌 무광 블랙으로 도색되었습니다. 이는 수석 디자이너였던 페르디난트 A. 포르쉐가 직접 건의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롤란드 하일러는 말했다.

알렉산더 포르쉐는 ‘Chronograph I’를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의 기준으로 삼는다. 선정 한 ‘베이직 오브젝트’는 톱 셀러가 되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시계는 스튜디오의 디자인 원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심볼이 되었다. 디자인은 다른 무엇보다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이 디자인 철학은 하일러에게 의미가 크다. 그는 주펜하우젠에서 기술적 스케치를 배웠으며, 명성 있는 영국 왕립 예술대학을 다녔다. 이후 주니어 디자이너로(이는 디자이너 초입 과정으로 배기관과 스포일러를 스케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포르쉐에 돌아와 결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포르쉐 스타일링 스튜디오의 대표가 된다. 그리고 2004년 ‘F.A.’가 그의 에이전시 업무에서 은퇴하게 된다. 주펜하우젠에 있는 본사는 이 스튜디오가 전과 같은 이름을 유지한 채 낯선 회사에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포르쉐 AG는 스튜디오 지분의 삼분의 이를 넘겨받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하일러를 첼암제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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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디자인은 기능에 충실합니다.” - 롤란드 하일러, 대표 이사

1972년부터 이어진 아방가르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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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 페리 포르쉐의 첫째 아들인 그는 1972년 제품 디자인을 위한 자립적인 회사인 스튜디오 F.A. 포르쉐를 설립했다. 1953년 태어나 울름(Ulm)에 있는 조형 대학에서 두 학기만을 이수하고, 포르쉐의 차체 스타일링 부서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1960년 대 초 그의 걸작이 탄생한다. 1963년 그는 아이콘이 된 포르쉐 911의 원조인 포르쉐 901을 선보인다. 2003년부터 스튜디오 F. A. 포르쉐는 포르쉐 AG의 일부가 되었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2012년 76살의 나이로 그의 생을 마감한다.

공식적으로 이 디자인 스튜디오의 이름은 ‘Studio F.A. Porsche’다. 이곳은 자동차와 무관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위한 브랜드인 ‘Porsche Design’의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튜디오의 전체 활동 비율에서 30퍼센트 정도만 차지할 뿐이다. 대부분은 기업 포르쉐나 자동차 분야와 상관이 없는 다른 산업 분야에서 들어오는 디자인 업무다. 창설된 이후 지난 45년간 이 스튜디오가 디자인하지 않은 제품 분야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안경, 필기도구, 가구, 그리고 트램까지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디자인했다. “저희는 페인트건이며 제약 회사를 위한 캡슐 충진 머신도 디자인했습니다.” 59세의 디자인 디렉터 그리고 부 대표인 크리스티안 슈밤크룩(Christian Schwamkrug)이 말했다. 그는 스튜디오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예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클래식 제품인 편리하며 유연성 있는 렌즈 교환식 선글라스와 약 20년간 주방제품 디자인을 평정한 브러시드 알루미늄 재질의 제품들이 속한다.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의 A350-1000기에 새로 장착된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한 예로, 이 좌석은 버튼 하나로 완전한 침대의 형태로 변한다. 알파 피아노 사의 독특한 전자 피아노도 있다. 이 디자인은 클래식한 콘서트 피아노의 미학적인 장점을 표현하고 있다.

슈밤크룩이 유리장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이 펜이 저희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입니다.” 첫눈에 보기에 이 물건은 수평으로 얇은 접합주가 있는 특수강 재질의 완성된 형태를 가진 펜이다. “이 접합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정밀하게 레이저 처리된 구불구불한 구조의 한 부분이며, 이 구조는 원형으로 하우징을 감싸고 있어, 접촉하는 압력에 의해 탄력을 받아 펜의 심이 나오거나 들어가는 기계적인 작용이 발생합니다. 각각의 디자인 요소는 기능을 가져야 하며, 이것은 저희의 디자인에서 가장 우선적인 조건입니다. 장식이 아닌 기능적 배경을 가진 구조입니다. 바로 엔지니어의 발상에서 발전한 디자인입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제품들은 엔터테인먼트이며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전형적인 예로 ‘911 Soundbar’가 있다. 이는 거실을 위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공명판이 포르쉐 911 GT3의 리어 머플러로 되어 있다. 포르쉐 디자인의 신조를 보여주는 다른 예로는 럭셔리 스마트폰인 포르쉐 디자인 화웨이 메이트 9가 있다. 이 스마트폰은 기술적 혁신으로 만들어진 뛰어난 성능과 미학이 함께 만난 집합체다. 이 우아한 기계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전자 제품에 대해 기대하는 높은 수준을 충족시키며 현재 계획 중인 다른 제품의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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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 한 번도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 크리스티안 슈밤크룩, 디자인 디렉터

자동차와 함께 60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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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튜디오의 새로운 활동 영역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프로젝트들이 포함된다. 하이테크 주택 타워인 ‘포르쉐 디자인 타워’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건물의 인테리어는 전부 이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했다. 물론 기능적인 면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이 포르쉐 디자인 타워는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이 빌딩은 자동차를 타고 60층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바로 자신의 아파트 내에 차량을 세워둘 수 있는 첫 번째 건물이 될 것입니다.” 슈밤크룩이 말했다. 타워의 외부 디자인 작업에도 함께 참여했다. 예를 들어 발코니의 유리 부분이 부분적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이유는 대서양의 기후적 영향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핀츠가우에서 근원한 아이디어이다. 마이애미는 첫 번째 도시다. 2019년에는 프랑크푸르트에 유럽의 첫 포르쉐 디자인 타워가 세워질 예정이다. 브라질과 말레이시아의 대도시 쿠알라룸푸르에도 포르쉐 디자인의 철학을 준수하는 주택용 타워가 하늘을 향해 솟을 예정에 있다. 이 순간 첼암제에서는 스튜디오의 초창기와 그 설립자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2012년 사망했지만, 그가 일하며 그의 본가를 바라보곤 했던 그의 사무실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이 바로 원점이다. 현재 디자이너들은 포르쉐 디자인 타임피스 사와 함께 새롭고 혁신적인 컨셉트의 시계를 공동으로 개발 중이다. 이는 또한 F.A. 포르쉐의 철학이 아직까지 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디자인한 모든 제품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Jan Van Rossem
사진 Thorsten Doe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