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von Karajan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포르쉐 중 하나인, 세기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930 터보 RS가 돌아왔다.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의 모습은 이젠 볼 수 없지만, 그가 사랑하던 차는 아직 볼 수 있다. 그의 스포츠카는 주인의 시간을 넘어 잘츠부르크에 있는 콘서트하우스 앞에서 초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빌프리드 슈트렐레(Wilfried Strehle)가 40년만에 오스트리아 아니프(Anif)에 있는 프리자허(Friesacher) 호텔에 들어섰다. 그리고 예전에 늘 주차하던 자리에 차를 댄다. 빌프리드 슈트렐레(Wilfried Strehle)가 카라얀의 차를 알아본다. 곧 그의 차도 도착했다. 그의 차는 1975년 제작된 포르쉐 911 터보 3.0(타입 930)이다. 슈트렐레는 베를린 필하모니와 함께 베를린에서 도쿄까지 전 세계를 함께 했고, 카라얀의 고향 잘츠부르크에서도 함께했다. 그가 카라얀의 차량의 후미에 “Von Karajan”이라고 세심하게 새겨져 있는 금속의 활자를 쓰다듬는다. 이 차는 어디선가 한번 봤을 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유일무이한 포르쉐 중 하나다. “제게는 정말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슈트렐레가 말했다. 그 역시도 음악계의 거장이다. 색이 잘 조화된 손수건이 꽂혀 있는 빨간색 벨벳 재킷을 입고, 은빛 머리카락을 잘 빗어 넘긴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카라얀의 모습이 떠오른다. 카라얀은 그의 상관이기도 했다.
슈트렐레는 이 차를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만남의 장소가 그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그의 감동은 옆 사람의 마음까지 벅차게 만들었다. 가스페달을 밟자, 박서 엔진의 음색이 굴곡진 건물의 벽을 타고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차가 크레센도로 연주하는 것 같았다. 부활절 연주회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잘츠부르크로 모여들었다. 곧 사람들이 포르쉐를 둘러쌌다. 의외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의 정체를 알아보는듯했다. 구경을 즐기는 사람들과 사진사의 사진 세례에 보답하기 위해 카라얀이 운전석의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았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언제나 지상을 초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린 체구에 거인의 아우라를 지닌 그는 지휘할 때는 자주 눈을 감았다. 이는 그가 셀 수 없이 많은 연주곡목의 모든 악보를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음악가이며 총감독이자 프로듀서, 영화감독, 건축가이자 마케팅 공상가였다. 르네상스적 인간이자 놀랍고 무서운 천재였다.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모든 것의 사소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관리했기 때문에 때때로 그의 관현악 단원들은 엉뚱한 연출까지 감당해야만 했다. 슈트렐레는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와 함께한 영화 촬영 에피소드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연주자들이 악기를 다루는 동작을 모두 동시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확히 맞추기 위해 음악은 이미 녹음된 것을 재생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카라얀의 마음에 들 때까지 수도 없이 많이 반복했다고 한다. 당시의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특별한 희망사항
니벨룽의 거장 카라얀은 환상의 소리를 실현시키듯, 그의 자동차에서도 음악에 버금가는 엔진 소리가 흘러 나오길 원했다. 그가 1974년 포르쉐 특별 주문 부서에 신형 포르쉐 타입 930을 특별 주문했을 때, 그의 주문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주문 내용은 기존 양산형보다 더 가볍고 스포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911의 중량이 1,000킬로그램을 넘어선 안됐다. 260마력에 1,140킬로그램 중량의 일반 모델을 재설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포르쉐 대표 이사였던 에른스트 푸어만(Ernst Fuhrmann)은 유별난 고객의 주문을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고 한다. 카라얀의 터보에는 RSR의 레이싱 스포츠형 차대와 카레라 RS의 차체, 레이싱 서스펜션과 롤바가 장착되어 있다. 인테리어는 절제 그 자체다. 뒷좌석에는 의자도 없다. 의자가 있던 자리를 강철로 된 롤케이지가 대신한다. 6기통 박서 엔진음이 라디오를 대신한다. 이 엔진은 확장된 터보차저와 예리한 캠샤프트로 인해 약 100마력을 더 낼 수 있다. 나아가 차 문에는 문고리 대신 잡아당겨 열리는 방식의 얇은 가죽 벨트를 장착했다. 그리고 1974년 르망 24시간 경주에서 2위를 차지한 차량, 911카레라 RSR의 색상이었던 ‘마티니 레이싱’을 도색하기 위해 포르쉐는 베르무트 제조회사 로시의 허락까지 얻어냈다고 한다.
평생 동안 선지자였던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니와 수많은 앨범을 녹음하며, 대담하게도 1970년대에 자신의 작품이 영원하길 꿈꿨다고 한다. “그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단 한 방향만 고집했어요. 쉴 줄 몰랐고 살아 평생 배우며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까지 함께 끝임없이 발전시키고자 했죠. 사업적인 면에서도요.” 슈트렐레의 이야기는 이 음향 심미주의자의 차가 탄생한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는 주펜하우젠의 브랜드 포르쉐를 선호했다. 그는 수 년에 걸쳐 포르쉐 356 스피드스터, 550 A 스파이더, 두 대의 959, 그리고 여러 대의 911을 운전했다. “저희는 매년 매혹적인 포르쉐의 최신 모델을 보며 어린 소년처럼 감탄했습니다.” 포르쉐에 대한 사랑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슈트렐레도 베를린 필하모니에 합류하고 일 년 뒤에 그만의 첫 911을 구입했다. 하지만 그는 카라얀의 차는 아직까지 멀고 먼 꿈이라고 말한다.
슈트렐레가 가죽이 씌워진 날씬한 버킷 시트에 앉았다. 이 시트는 키가 173센티미터 카라얀의 체구에 딱 맞게 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고 귀를 기울인다. 터보의 후미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리는듯하더니 곧바로 힘찬 바리톤의 비브라토가 울려 퍼진다. 전율이 뼈를 타고 심장을 관통한다. 슈트렐레는 마을을 지나 베르히테스가든 지역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산중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서 터보를 멈춰 세운다. 오늘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길’이라고 불리는 이 시골길에서 1970년대 어느날 누군가 카라얀을 사진에 담는다. 훗날 이 사진은 ‘유명 서곡집’ 앨범 표지를 장식한다. 슈트렐레가 고독하게 서있는 하얀 굴뚝의 집을 가리킨다. 카라얀이 살던 곳이다. 곧 터보가 잠잠해진다. 고요함에서 경건함이 느껴졌다. 그를 지휘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난 오늘, 지휘에 맞춰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한 단원이 주인 없는 집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슈트렐은 이 스포츠카를 위로하려는 듯 알프스의 산길을 향해 주행한다. 로스펠드로 향하는 파노라마가 펼쳐진 이 길은 카라얀이 가장 즐겨 달리던 코스였다. 자기관리가 엄격했던 대가 카라얀은 아침이면 항상 6시 전에 일어나 악보를 연구하거나 요가를 했다. 그리고 때때로 아침 해와 함께 산중으로 드라이브했다. 도로를 따라 약 16킬로미터를 달리는 내내 장관이 펼쳐지는 길이다. 이 길을 카라얀의 포르쉐가 다시 달리고 있다. 슈트렐레가 기아를 내리자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고, 구름을 헤치고 보탄(Wotan)이 나타나듯 후미에 불이 붙은 것만 같다. 발퀴레(Walküre)의 지팡이를 창밖으로 휘두르며 커다란 함성과 함께 360마리의 말들이 이끄는 차를 타고 산을 정복하고싶을 정도다. 하지만 의외로 카라얀은 이 터보를 자주 타지는 않았다. 그가 1980년에 이 차량을 팔았을 때 타코미터는 겨우 3,00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그가 이 차를 5년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전설적인 포르쉐의 현재 값어치는 3백만 유로를 넘는다. 2004년 이 차는 6번째 주인을 만난다. 새로운 주인은 이 보물 차를 다른 소장품과 함께 비밀스럽게 보관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주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잊혀지지 않은 대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 잊혀지질 않을 이름 카라얀.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가끔 빌프리드 슈트렐레는 옛 녹음 테이프를 듣는다고 한다. 1972년 녹음한 푸치니 작곡의 ‘라보엠’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믿을 수 없을 열정, 이 추진력이 아직까지도 느껴져요. 이를 통해 비유적으로 포르쉐에 대한 그의 열정을 설명할 수 있겠지요.” 확신에 찬 불교신자였던 카라얀은 죽음을 믿지 않았다. 만약 영혼의 일부가 함께했던 사물이나 다른 사람 안에서 계속 살아 숨쉰다면, 아마 40년이 지난 오늘 이 터보가 다시 한 번 아니프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재촉하듯, 여전히 앞을 향해 움직이듯, 여전히 초월적으로, 어쩌면 카리얀은 현존한다.
글 Lena Siep
사진 Patrick Gosling, Siegfried Lauterwasser/Karajan-Arch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