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과 고요함이 흐르는 독일로 떠나는 여행. 가로수가 늘어선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벗어나 호수, 자연, 고도의 문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 포르쉐 타이칸을 타고 괴테, 폰타네, 베토벤의 나라로 떠나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이 흐르는 시골길을 달립니다. 물론 아우토반에서 24시간 레이싱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여유를 가지고 지방 도로의 풍경을 즐기며 독일의 시인과 사상가들의 낭만주의 자취를 따라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포르쉐 타이칸을 타고 주행합니다. 바람 속 돛단배처럼 우리는 고요 속으로 미끄러지듯 내달립니다. 이 고요는 스스로 흔들리며 다른 것들도 흔들리게 만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으며, 우리는 텅 빈 도로를 달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러 발길을 옮깁니다. 남부 바이에른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출발해, 북부 브란덴부르크주의 작은 도시 노이루핀에도 잠시 들릅니다.
타이칸은 마치 이동하는 동안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쉴러를, 브란덴부르크에서는 테오도어 폰타네를 만나고, 라인 강변의 도시 본에서는 베토벤의 250번째 생일을 축하해봅니다. 머릿속은 서정시와 음악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남부에서 북부로, 동부에서 서부로 여행합니다. 그렇다고 독일 고속도로의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직진하는 여행은 결코 아닙니다. 포르쉐의 순수 전기 스포츠 세단을 타고 의식이 확장되는 흐름에 따라 우리는 독일의 여러 가지 면모를 발견합니다. 오페레타 같은 바로크 양식은 바우하우스 양식과 대조를 이룹니다. 중세 시대 지역의 중심지, 고딕 양식의 성당들, 고전주의와 야생의 자연을 한껏 즐겨봅니다.
우리의 시선은 독일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프랑스까지 닿습니다. 덴마크도 보고 싶지만, 북쪽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은 팬데믹 때문에 아직 막혀 있습니다.
괴테, 실러, 그로피우스와의 한담
바이마르시는 독일 중부 지역인 튀링겐주에 있습니다. 도심으로 가는 길에는 자갈길이 깔려 있습니다. 유명한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겸 옛 성이 서 있는 민주주의 광장을 지납니다.
우리는 타이칸을 주차해 놓고 산책을 시작합니다. “걸어서 가본 곳이 아니면 진짜 가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요한 볼프강 괴테의 말처럼 자유롭게 걸어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정원이 딸린 한 건물에 도착합니다. 이 건물에는 1776년 세계적인 작가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처음 묵었던 숙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이 곳에서 그는 <마왕>이라는 발라드 형식의 시를 지었고, 이 시는 오늘날까지도 학생들의 필독서에 속하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일름 강 너머에는 ‘프라우엔 플란’ 거리를 따라 괴테가 살았던 집이 있는데, 아쉽게도 밖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괴테는 1832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건너편에는 ‘괴테 분수’가 호젓이 찰랑거리고 그 옆에서 튀링겐 사람이 ‘로스트브라트부어스트’라는 이 지역의 원조 소시지를 굽고 있습니다.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 테아터 광장에는 도시의 지성인이었던 귀족들을 상기시키는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옆에는 동시대 고전주의 문호 프리드리히 폰 쉴러가 있습니다. <마법사의 제자>가 <군도>를 만납니다. 이 두 명의 세계문학 거장들은 바이마르와 독일 문학의 황금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1850년대,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음악으로 소위 ‘은의 시대’가 이어지게 됩니다. 이곳에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던 1919년, 바이마르는 20세기 또 한 번 세계의 양식을 주도합니다. 바우하우스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는 예술을 산업화에서 떼어내고자 했으며 예술작품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바로 이것이 전 세계 건축에 대혁명을 불러왔던 현대 건축과 사상의 신조였습니다. 고전주의 바이마르 앙상블과 같이, 바우하우스의 작품인 하우스 암 호른(Haus am Horn)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꼽힙니다.
작센 스위스
타이칸을 충전하는 동안 우리는 엘베 사암 산맥과 다음 목적지인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의 고향 드레스덴에 대해 살펴봅니다. 전 시대 독일인들에게 <에밀과 탐정들>, <쌍둥이 로테> 등 그의 동화책이 없는 어린 시절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타이칸 배터리가 100퍼센트를 가리키고, 우리는 몽환적인 어린 시절의 꿈에서 깨어납니다. 몇 킬로미터 더 가기도 전에 독특하고 기이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가파른 사암 바위들이 솟아 있습니다. 수백만 년에 걸쳐 물과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형상들입니다. 우리는 오래 전 학교의 지리 수업을 떠올립니다. 흔들리는 지구와 대륙이동설. 엘베 강을 건널 때 우리는 판 구조론에 대한 생각에서 깨어납니다. 두 나라를 결합하는 봉합선 같은 섬세한 물줄기의 강. 이 강을 사이로 작센주 ‘바드 샨다우’와 체코의 ‘데친’ 지역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국경 근처에서 우리는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산인 릴리엔슈타인을 바라봅니다. 그 위에서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를 볼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발길을 옮깁니다. 아름다운 피르나 지역을 지나 작센주 주도인 드레스덴 방향으로 향합니다. 드레스덴에서 우리는 테오도르 폰타네가 이곳에서 약사 보조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여기에는 괴테와 쉴러도 그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있는데, 세계적인 작가들의 동상과 함께 오페라 하우스 ‘젬퍼오퍼’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 번 파괴되었던 이 건축물은 건축가인 고트프리드 젬퍼의 이름에서 비롯됐습니다. 1878년 성대한 오픈식에서는 괴테의 작품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습니다.
폰타네와 함께 브란덴부르크를 지나는 길
가로수 나무 끝이 서로 조심스럽게 스치고 나무가지들이 드리운 그림자는 아스팔트에 무늬를 아로새깁니다. 브란덴부르크 경계 지역의 로맨틱한 가로수 길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전기 스포츠카로 소리 없이 이곳을 가로지르는 동안 폰타네가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는 한때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브란덴부르크 지역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내가 감히 희망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 테오도르 폰타네, 시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그는 1819년 베를린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의 노이루핀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행하기를 좋아했지만, 이국 땅에서는 언제나 고향을 그리며 강과 호수, 제방, 숲의 아름다움을 칭송했습니다. 문학 작가이자 극비평가였던 그는 브란덴부르크와 포어포메른의 수많은 가로수 길을 “여행길의 초록 숲”이라고 불렀습니다. 잎이 무성한 여름 가로수 길 아치가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폰타네는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여행기>에서 오늘날 폴란드 국경을 따라 거의 60킬로미터에 달하는 오더브루흐 지역을 다뤘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에피 브리스트>는 189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의 사망 2년 전이었습니다. 이곳의 자전거 길을 따라가다 보면 폰타네와 ‘바드 프라이엔발데’ 거리의 폰타네 하우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약국 앞을 지납니다. 테오도르 폰타네의 첫 이름은 사실 하인리히였습니다. 그의 작품과 달리 이 이름은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라인 문화제에서 만나는 베토벤
본에서는 2020년을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해로 지정해 그를 기념하는 특별한 한 해를 준비했습니다. 모든 시대를 걸쳐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토벤은 250년 전 이곳 라인 강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특출한 재능, 세계에서도 가장 큰 축복을 받은 피아니스트.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교향곡 5번일 것입이다. 첫 네 음률은 고전 음악 중에서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며 떠나지 않을 영원한 멜로디입니다. 베토벤 자신은 20대 후반에 난청이 되었고 40대 후반에는 거의 청각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작곡을 했고 눈으로 소리를 들었습니다. 본가쎄(Bonngasse) 20번지에 바로크 풍의 석조 전면을 가진 그의 생가가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의 주변에는 실내악 연주홀과 베토벤 기록물 보관실이 있습니다. 이 작곡가가 프리드리히 쉴러의 유명한 <환희의 송가>를 교향곡 9번 4악장에 영원히 담을 때, 어쩌면 그는 실제로 저기 저 창가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야성적인 헤어스타일의 이 천재적인 음악가는 근처의 지벤게비르게 산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낮은 산맥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던 ‘페터스베르크’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곳에는 333미터 높이로 이 산과 똑같은 이름의 호텔이 솟아있는데, 주요 국가들의 수장이 투숙할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나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으로 왔고, 훗날에는 그의 후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방문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이든 빌 클린턴이든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곳 높은 곳에서 이 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는 점입니다. 1844년 하인리히 하이네의 풍자적인 서사시 <독일, 어느 겨울동화>에서 ‘아버지 라인’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강입니다. 1232.7킬로미터 길이의 이 강은 예전에는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를 서로 이어주는 물길로 당당하면서도 고요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모습을 침묵 속에 잠시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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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395크리스토포러스 잡지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www.christophorus.porsche.com